그룹명/나의 편지 I

왕비의 슬픈 이야기

다음에는 2008. 4. 23. 05:30
종로구, 25일부터 숭인공원서 첫 추모제
여고생 왕후 뽑고 영월선 진혼무 행사도

1453년, 조선의 판돈영부사 송현수의 13살 딸은 왕비로 간택됐다. 배필은 앳된 왕비보다도 한살이 더 어린 단종이었다. 그러나 어린 왕은 무기력했고, 국가의 실권은 국왕의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있었다. 조선의 열번째 왕과 왕비는 2년 뒤에 삼촌의 손에 의해 명목뿐인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1456년 6월에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자 단종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됐다.

뒤에 정순왕후로 이름 붙여진 왕비는 남편의 유배지에 따라가지 못했다. 그는 궁궐에 쫓겨나 흥인지문 밖 동망봉 기슭에 자리잡았다. 시녀 셋과 함께 초막을 짓고 "업보를 씻는다"는 의미의 정업원이라 이름지었다. 곧 왕비의 아버지 송현수가 역모를 뒤집어 쓰고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폐위된 임금도 그해 10월 삼촌이 보낸 사약을 거부하고 목을 매 자살했다.

그 때부터 폐비는 아침·저녁으로 산 봉우리에 올라서 단종의 유배지인 동쪽을 향해 통곡했다. 이 곡소리가 산 아랫마을에 들리면 온 마을 여인네들이 땅 한번 치고 가슴 한번을 치는 동정곡을 했다고 전해진다. 왕비가 오르던 언덕은 동쪽을 바라본다는 뜻의 동망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런 사정을 들은 조정에서 부근에 '영빈정동'이라는 집을 지어줬으나, 왕비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요절한 군주인 남편을 그리며 평생을 가난하게 살던 왕비는 82세에 생을 마감했다.

비운의 국모, 정순왕후를 기리는 문화제가 종로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종로구는 오는 25일부터 사흘 동안 정순왕후가 폐위된 뒤 줄곧 살던 종로구 숭인동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 등지에서 추모제와 재연행사, 정선왕후 선발대회를 연다고 22일 밝혔다. 25일에는 종로구 숭인1동 동망봉 숭인공원에서 정순왕후의 슬픔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행사장 일대에서는 바자회와 궁중음식 맛보기, 천연염색 체험 행사가 열린다. 또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만 18세 이하 종로구의 여고생을 대상으로 정순왕후 선발대회가 열린다. 수상자는 문화제 기간 재연행사에 출연한다.

26일에는 단종과 정순왕후가 유배를 앞두고 이별한 현장으로 알려진 청계천 영도교에서 재연 행사가 열린다. 두 사람의 사연으로 인해 '영이별다리', '영도교'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다리를 따라 약 2.5㎞ 구간에서 정순왕후와 금군과 수어사 등 400여명이 가장 행렬을 한다. 27일에는 강원도 영월군에서 정순왕후와 단종과 재회하는 장면을 그린, '천상해후' 진혼무 등 행사가 열린다. 홈페이지 www.jongno.go.kr, (02)731-0656.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kkt@hani.co.kr , 사진 종로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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