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 하구 . . 한 판 싸움- 전면전으로
50년쯤 전에 어느 5월이더라구요 . . "오월은 푸르구나 아 ~ 우리들은 자란다. . 아 ~ 우리들 세상" 같기만 했엇습니다. . . .
제가 6학녁 3반 때이었씀미다.
혜화학교 최고 학년인 6학년이 되어 진짜루 우린 - 어른 다된 그런 느낌이었었는데 . . .
어린이 날이면 - 무신 어린이 대회를 한다는 둥 ? 서울운동장에를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벌써 저번에 - 3월에는 <할아버지 대통령집>에도 갔다 온적이 있기 때문에
걸어서 가는 먼 길 나들이에는 제법 이력이 났었더랬죠.
아침마둥 - 조회를 끝내면 참 신나는 행진곡 - 에 맞춰
수쟈 폰(?) 미국 행진곡으로 행진 연습도 하였으니까 . .
용감한 군인 아저씨들처럼 씩씩하게 걷는게
공연히 신이나던 시절입니다.
음악 - " 니 나 모리나 ~ 도꾸샤 . . " ㅎㅎ
이건 미국 해병대 찬가이던가?
아니면 . . 아마도 "성조기여 영원하라 " 머 그런거 였던거 같죠?
근데, 서울 운동장 . . 동대문 꺼정 대학로를 따라걷고 먼지나는 길을 걸어서 걸어서 갔다가
땡볕에 찡그리고들 서서 행사 끝나고는 또 걸어서 돌아오는데. .
종로 5가 못미쳐 개천 옆에 샛길로 해서
이화동을 거쳐 . . 돌아오는 길이엇죠 . .
대열이 조금은 흐트러지기도 했는데 . . . .
어디선가? . . 떵텅학교같은. . < 창경 > 국민학교 대열과 마주치고 지나치면서
서로 욕찌꺼리하는 마찰이 좀 있었나 봅니다요 . .
그리곤 . . 학교로 돌아와서 정상적으로 파하고 집에들 돌아 갔는데 . .
우리 혜화의 용사 몇명이 이화동 뒷 골목에선가? <창경아해>들과 맞딱뜨려
맞짱이 되게 붙었다는 겁니다.
거리의 용사들처럼 아니면 서부 활극의 배우들처럼
멋지게 격투를 벌였다더라고요
물론 혜화의 덩치들이 <창경 아그> 들을 약간 손 봐주고 혼을 내서 쫓아보냈다는 말을
다음 날의
소식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 . 그 다음 날. . 학교가 파하기 전에 . . 우리 학교 분위기가 어쩐지 뒤숭숭 해지는것이었습니다. .
어제 매맞은 녀석들의 호소에
<창경> 아해들 5/6 학년의 거의 전교생이
돌과 몽둥이로 무장(?)을 하고는 쳐들어 온다는 겁니다
복수를 위해 - 우리 들을 패주러 . .
야 ~ 혜화넘들 까부수러 가자 . . 와 ~! 이러고 울 학교로 몰려 온다는 겁니다.
드디어 오늘, 우리 혜화 학교 앞 뒤 ~ 골목 , 골목에 진을 치고
우리 아해들의 하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쨔 하 고~ 학교안에 알려졌습니다. .
우린 초죽음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여자애덜두 . .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 . 벌벌 떨게 되엇고. .
선생님들 꺼정이나 종례를 하면서
"너희들~
집에 갈때, 혼자 가지는 말고. . 대여섯 명이 조를 짜서 . . 함께 행동하라"고 일러 주기도 하였지만. .
종례는 끝이나도 -
아무도 . . 교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내고 . .
침묵으로 어두운 공포속에 잠잠히 교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 - 큰일 났습니다. . 나는 집에서 나를 데리러 올 사람도 없는데 . . . ?
집에를 못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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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악한 유기오(6.25) 동란이 아직도 기억에 가깝던 시절이었고
거리의 폭력이 판을 치던 그런 시절 - .
올아 지게도 가난하였기 땜에 . .
법도 아랑곳않던
50년전 세상시절의
서글퍼도 그립기만 한 어릴적 이야기-
한 토막 입니다.
그래도 혜화는 매우 강건 했더랬습니다. .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