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비호· 애와증/혜화 ~

<창경> 하구 . . 한 판 싸움- 전면전으로

다음에는 2008. 5. 13. 00:33

50년쯤 전에 어느 5월이더라구요 . . "오월은 푸르구나 아 ~   우리들은 자란다. .   아 ~  우리들 세상" 같기만 했엇습니다. . . . 

제가 6학녁 3반 때이었씀미다.

 

혜화학교 최고 학년인  6학년이 되어 진짜루 우린 - 어른 다된 그런 느낌이었었는데 . . .

어린이 날이면 -  무신 어린이 대회를 한다는 둥 ?   서울운동장에를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벌써  저번에 -   3월에는  <할아버지 대통령집>에도  갔다 온적이 있기 때문에

걸어서 가는 먼 길 나들이에는 제법 이력이 났었더랬죠.

 

아침마둥 -  조회를 끝내면 참 신나는 행진곡 - 에 맞춰

수쟈 폰(?) 미국 행진곡으로 행진 연습도 하였으니까 . .

용감한 군인 아저씨들처럼  씩씩하게 걷는게

공연히 신이나던 시절입니다.

 

음악  -  " 니  나  모리나 ~  도꾸샤 . .  "  ㅎㅎ

이건 미국 해병대  찬가이던가?  

아니면 . . 아마도  "성조기여 영원하라 "  머  그런거 였던거 같죠? 

 

근데,  서울 운동장 . . 동대문 꺼정  대학로를 따라걷고  먼지나는 길을 걸어서 걸어서 갔다가

땡볕에 찡그리고들 서서 행사 끝나고는  또 걸어서 돌아오는데. .

종로 5가 못미쳐  개천 옆에 샛길로 해서

이화동을 거쳐 . .  돌아오는 길이엇죠 . .

대열이  조금은 흐트러지기도 했는데 . . . .

어디선가? .  .   떵텅학교같은. . < 창경 >  국민학교 대열과 마주치고 지나치면서

서로 욕찌꺼리하는  마찰이 좀 있었나 봅니다요 . . 

그리곤 . . 학교로 돌아와서 정상적으로 파하고 집에들 돌아 갔는데 . .

 

우리 혜화의  용사 몇명이  이화동 뒷 골목에선가?  <창경아해>들과 맞딱뜨려  

맞짱이 되게 붙었다는 겁니다.

거리의 용사들처럼  아니면  서부 활극의 배우들처럼

멋지게 격투를 벌였다더라고요 

물론 혜화의 덩치들이  <창경 아그> 들을  약간 손 봐주고  혼을 내서 쫓아보냈다는 말을

다음 날의

소식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 . 그 다음 날.  . 학교가 파하기 전에 . .  우리 학교 분위기가 어쩐지 뒤숭숭 해지는것이었습니다. .

어제 매맞은 녀석들의 호소에 

<창경> 아해들  5/6 학년의 거의 전교생이

돌과 몽둥이로 무장(?)을 하고는  쳐들어 온다는 겁니다

복수를 위해 -  우리 들을 패주러 . .

야 ~    혜화넘들  까부수러 가자 . . 와 ~!  이러고  울 학교로 몰려 온다는 겁니다.

드디어 오늘,   우리 혜화 학교 앞 뒤 ~  골목 ,  골목에 진을 치고

우리 아해들의 하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쨔 하 고~  학교안에 알려졌습니다. .

우린 초죽음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여자애덜두 . .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 .   벌벌 떨게 되엇고. . 

 

선생님들 꺼정이나 종례를 하면서

"너희들~

집에 갈때,  혼자 가지는 말고. . 대여섯 명이  조를 짜서 . . 함께  행동하라"고  일러 주기도 하였지만. .

종례는 끝이나도 -

아무도 . . 교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내고 . . 

침묵으로   어두운 공포속에 잠잠히 교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 - 큰일 났습니다. .   나는 집에서 나를 데리러 올 사람도 없는데 . . . ?

 

집에를 못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 . 

 

***********

 

험악한 유기오(6.25) 동란이 아직도 기억에 가깝던 시절이었고

거리의 폭력이 판을 치던 그런 시절 - .

올아 지게도 가난하였기 땜에 . .

법도 아랑곳않던

50년전  세상시절의

서글퍼도 그립기만 한  어릴적 이야기-

한 토막 입니다.

 

그래도 혜화는 매우 강건 했더랬습니다. .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