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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 桃花 를 꿈꾸며

다음에는 2009. 8. 18. 05:55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동쪽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 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

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