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창문을 열어다오, 사랑하는 이여 Open the Lattice, Love》를 출판하였으며,
그 무렵에는 친구들과 함께 합창단을 조직하여 많은 가곡을 제공하였다.
1848년 《오, 수재너 Oh! Susanna》가 100달러로 팔린 것에 자신을 얻어 가곡작가의 길을 택하게 되었으며 그 후 《시골 경마(競馬)》《고향 사람들 Old Folks at Home》《벤조를 뜯어라》(1851) 《주인은 차디찬 흙속에 Massa’s in the Cold, Cold Ground》(1852) 《켄터키 옛집 My old Kentucky Home》《금발의 제니》《올드 블랙 조 Old Black Joe》 등의 작품이 E.P.크리스티악단 및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 등에서 불리어 유행함으로써
그의 이름은 미국 전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남북전쟁(1861∼1865)의 영향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고 가정생활의 파탄도 있어 혼자서 뉴욕으로 떠나 거기서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빈곤과 괴로움 속에 죽었다.
그의 사후 2개월 만에 유작 《꿈꾸는 가인(佳人)》이 출판되었다.
출판된 그의 작품은 모두 188곡으로 이에는 풍부한 시정(詩情)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선율 속에 깊은 애정과 인간성이 표출되어 있으며,
유럽적인 감각과 함께 남부 흑인의 생활이나 민요의 영향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미국민요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작품은 현재 전세계에서 애창되고 있다.
1939년에 그의 전기적 영화 《그리운 스와니》가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