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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남쪽바다 . . .

다음에는 2007. 5. 4.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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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량도! 얼핏 들으면 '사랑도'로 들리는 섬입니다. 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니 섬 이름을 사랑도로 바꿔도 좋을 듯합니다.
ⓒ 임윤수
사량도! 얼핏 듣기에 그 섬의 이름은 '사랑도'였습니다. 얼마나 사랑에 한이 맺혔기에 섬 이름조차 '사랑도'라고 하였을까가 궁금합니다. 구구절절한 전설이나 남녀 간의 애틋하고도 애달픈 사랑이야기라도 담겨있을 것 같은 섬 이름입니다. 등산깨나 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사량도와 지리산을 말하기에 한려수도, 통영 앞바다에 있는 사량도엘 다녀왔습니다.

사량도야? '사랑도'야?

농부들이 땅 일궈 논밭 만들어 씨앗 뿌리고 가꿔 알곡이나 과실을 거둬들이듯, 어부들은 바다에 어장을 만들어 치어나 종자를 넣어 해산물이나 생선을 얻습니다. 어버이들은 자식들의 가슴에 인륜을 심고, 연인들은 서로 가슴에 뜨거운 사랑을 심는 봄날 방랑의 끝자락에 사량도를 매달아 놓고 몇 날 며칠을 별렀습니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통영 가오치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전 9시가 되었습니다. 사량도행 배가 뜨려면 아직 30여분 시간이 남았습니다. 차에서 내려 허파가 불뚝해지도록 바닷바람을 들이마시고 있노라니 승선을 재촉하는 뱃고동을 울려줍니다.

▲ 사량도로 가는 뱃길 옆은 어부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 임윤수
선객들과 15대쯤의 차량을 실은 사량호가 뿌뿌~ 거리며 선착장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갑니다. 오밀조밀하게 징검다리처럼 놓여있는 섬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미끄러지듯 바다를 가르고 있습니다.

계절 탓인지 아니면 연안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인지 안개라도 낀 듯 시야가 뿌옇기만 합니다. 바다에는 양식장임을 알리는 부표들이 알록달록하게 떠있습니다. 옆으로 지나갈 때야 줄 맞춰 놓여있는 것이 확인되지만 멀찍이서 볼 때는 그냥 마음대로 놓인 듯 출렁이는 파도 따라 일렁이는 한 점 한 점으로만 보였습니다.

양식장에서 뭔가를 손질하고 있는 어부가 저만치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부는 바다에 부표를 이용해 한 뜸 한 뜸 자수를 놓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에 부표로 그려가는 자수에는 어부들의 땀이 배어있고 생계와 희망이 매달려있을 듯합니다. 섬과 섬, 양식장과 양식장을 피해 40여분을 달리니 사량도에 도착합니다.

▲ 반듯반듯하게 놓인 부표들이 마치 비단에 자수라도 놓은 듯 곱기만 합니다.
ⓒ 임윤수
정말 드라마의 배경과 같은 작은 섬입니다. 섬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량도는 윗섬과 아랫섬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윗섬에 먼저 도착한 배에서 내려 돈지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차를 가지고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게으른 탓과 섬을 한 바퀴 일주해 볼 거라는 욕심 때문에 차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선착장에서 좌측으로 난 해안도로를 따라 10여분 달리니 그곳이 사량도의 한쪽 끝인 돈지 마을로, 사량도의 일주가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 해안선이 복주머니처럼 오목하게 안으로 들어와 아늑한 풍경입니다. 공터에 차를 세우고 이정표를 따라 지리산을 향해 등산을 시작합니다.

얼핏 들었을 때 사랑도로 들리던 사량도, 뱀사(蛇), 들보 량(樑), 섬도(島)!

섬 이름 치곤 조금 괴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랫섬에서 바라보았을 때 윗섬의 형상이 마치 짝짓기를 하고 있는 뱀의 형상이라 사량도라고 했다고 하지만 아랫섬에서 윗섬을 바라보지 못했으니 그것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섬의 형태가 뱀을 닮아 사(蛇)자를 사용했다면 량(樑)자는 어떻게 된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 사량도! 섬 전체가 뱀 비늘처럼 납작납작한 돌이고, 그러한 돌들이 척추나 대들보처럼 섬 능선을 이르고 있어 사량도라고 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 임윤수
따뜻한 남쪽이라 그런지 파릇파릇한 마늘이 한 뼘이 넘도록 웃자라 있습니다. 마늘 싹 너머로 돈지분교와 집들이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산, 돈지리 마을 뒷산이 여느 산들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바위로 된 암산이지만 여느 산들과 같지 않고 얼룩얼룩한 뱀 문양을 띠었습니다. 혹시 저 문양, 뱀처럼 얼룩얼룩해 보이는 산색 때문에 사자를 쓴 게 아닐까가 물음표로 떠오릅니다.

마을을 벗어나니 온통 돌길입니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정상을 향해 오르는 내내 눈에 띄는 돌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납작납작한 돌들입니다. 살림을 하던 아낙들이 보기엔 그냥 시루떡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닥에 깔리고 흩어져있는 돌조각들은 영락없는 뱀 비늘이었습니다.

여느 산들도 능선 일부나 군데군데가 암석으로 되어있지만 사량도는 섬 전체가 동물의 척추처럼 끝에서 끝까지가 암반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뱀 비늘처럼 생긴 돌로 된 능선이 대들보나 척추처럼 섬 전체를 종주하고 있으니 사량도라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산행길이 참 맛있습니다.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합니다.
ⓒ 임윤수

참 맛있는 지리산 산행길

30여분 산길을 오르니 돈지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돈지뿐 아니라 사방으로 탁 트인 바다와 몇몇 집씩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촌마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다에는 고깃배가 떠있고 부표를 띄워놓은 양식장들이 바둑판처럼 보입니다. 멀리 육지도 보였지만 뿌옇게 가린 시야에 흐릿할 뿐입니다.

지리산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지리산이 보이는 곳이라고 하기에 행여나 천왕봉을 볼 수 있을까를 기대했건만 뿌연 시야 탓에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산행 코스가 참 맛있습니다. 밋밋하지도 않고, 너무 힘들지도 않으며, 지루하지도 않고, 단조롭지도 않습니다. 달콤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편한 길이 있는가 하면,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킨 만큼 쓰고도 매콤한 길도 있습니다. 산행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이란 맛은 다 느낄 수 있는 사량도 능선, 지리산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걷기도 하고, 향긋하고 고소한 맛이 우러날 것 같은 꽃길도 걷습니다. 사각사각, 뱀 비늘 같은 돌들이 발아래서 미끄러지듯 소리를 냅니다. 쌉싸래하고도 신맛이 배어날 것처럼 낭창낭창한 바위틈새를 지나고, 울퉁불퉁한 절벽 위를 걸을 때면 발바닥에서 짭조름한 맛이 느껴질 만큼 땀이 배어 나오는 그런 길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오른쪽 돈지포구와 저만치 왼쪽으로 보이는 대항포구는 동치미국물을 가득 담은 김치대접처럼 시원한 느낌입니다.

▲ 외 밧줄에 매달려 올라가야 하지만 봉긋한 엄마의 젖가슴 같은 여유로움도 있습니다.
ⓒ 임윤수
이리 봐도 바다, 저리 봐도 바다,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은 온통 장관인 바다와 섬들입니다. 군데군데 오밀조밀한 어촌들이 보이고, 소꿉장난을 하며 땅따먹기를 한 듯 구불구불하게 논둑이 만들어진 다랑논들이 보입니다. 쉬지 않고 걷다보니 어느 듯 옥녀봉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절벽을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오금이 들러붙은 듯 옴짝달싹 안 합니다. 수직으로 내려다보이는 낭떠러지에 지레 겁먹어 안절부절만 할 뿐입니다. 남자들 몇몇이 먼저 내려가며 시범을 보이고, 이렇게 저렇게 부축해 가며 겨우겨우 아래로 내려갑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그 아주머니는 괜스레 왔다고 후회도 하고 겁도 먹었겠지만 일단 안전하게 내려갔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짜릿함과 성취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런 낭떠러지 길을 내려가니 까마득한 절벽이 눈앞을 막아섭니다.

거길 올라서야 옥녀봉입니다. 투구를 엎어 놓은 듯, 풍만한 처녀의 젖가슴처럼 볼록하게 솟아있습니다. 대칭을 이루어 정말 아름답게 솟아 있습니다. 수직절벽이긴 하지만 밧줄이 늘여져 있고, 발을 디딜 수 있는 돌기부들이 있어 겁을 먹지만 않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 까치도 사량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화전놀이를 나왔나 봅니다.
ⓒ 임윤수
옥녀봉의 기를 받는 아주머니들

절벽에 올라서니 봉긋한 옥녀봉 정상입니다. 성에 대한 부끄러움쯤은 달관한 듯 아주머니 몇몇 분은 기를 받아가야 한다며 옥녀봉 정상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낭떠러지 아래를 바라보며 바들바들 떨던 아주머니도 힘들게 지고 왔을 과일들을 나눠주며 여유를 보입니다. 정녕 옥녀의 기가 솟구치기라도 하는지 감흥이 솟구칩니다. 사방을 뱅글뱅글 돌며 눈길이 닿는 풍경들을 가슴속에 챙겨 넣습니다.

턱걸이를 하듯 올라온 길이니 그만큼 낭떠러지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합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줄사다리가 매어있어 힘들지 않게 내려갈 수 있습니다. 옥녀봉을 내려서니 다시 가파른 절벽입니다. 그 절벽에 다시 올라서니 돌덩이 수북하게 쌓은 돌 더미가 나오고 그곳이 옥녀봉이라는 비닐 안내장이 꽂혀 있습니다.

옥녀봉에도 화마에 지나간 듯 타버렸거나 그을린 소나무에는 삭막한 숯검정이 그대로인 모습입니다. 돋아 오르는 새순 사이로 사량도를 들어와 처음 발을 내딛던, 선착장이 있는 금평리가 보입니다. 면소재지라고 하지만 도심지의 규모있는 마을보다도 작아 보입니다.

▲ 옥녀봉에도 화마가 지나간 생채기가 시커먼 숯검정으로 남아있습니다.
ⓒ 임윤수
마침 썰물 때라 해변이 드러나니 마을 사람들은 선착장으로 모여들어 뭔가를 열심히 캐내거나 잡고 있습니다. 바닷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한가로운 풍경입니다. 그제야 산행을 시작하던 출발점, 돈지에 주차해놓은 차가 생각났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막배가 몇 시냐고 물으니 불과 40여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돈지 쪽으로 가는 차가 보이질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면사무소로 쫓아가 돈지쪽으로 가는 버스편을 물으니 배가 들어와야 버스편이 있다고 합니다.

젊은 면사무소 직원의 친절

여느 곳처럼 버스 시간이 정해져 운행되는 것이 아니라 배가 도착하면 그 시간에 맞춰 버스를 운행한다고 합니다. 큰일 났습니다. 배가 들어와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돈지리에 가서 차를 가지고 오면 정박 시간이 기껏 10여분일 배는 이미 떠났을 테니 말입니다. 하는 수 없이 면사무소에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 사량면 면소재지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들은 썰물로 드러난 해변에는 뭔가를 캐거나 잡으러 모여들었습니다.
ⓒ 임윤수
면사무소를 들어서며 두리번거리니 제일 먼저 일어나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주던, '사회복지'란 팻말이 달린 테이블 안쪽에 있던 젊은 공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면사무소에는 그 시간에 운행할 만한 차량이 없었습니다.

참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떻게라도 도움을 주려 옆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지만 직급이 더 높아 뒷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어느 분이 그러지 말라는 듯한 말을 합니다.

누구든 찾아와 부탁을 한다고 다 들어줄 수는 없는 게 현실이지만 어렵게 부탁하는 것을 쉽게 거절하는 것 같아 속으로는 야속했던 게 사실입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하려면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머리를 긁적거리고, 마음 또한 움츠러들게 마련인데 눈앞에서 도움을 주려는 사람을 제지하려는 듯한 목소리를 직접 귀로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 섬의 아름다움과 한 공무원의 친절 덕에 사량도를 뒤로 하며 떠나오는 마음에는 사랑도로 기억될 듯합니다.
ⓒ 임윤수
젊은 공무원은 면사무소에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근처에 있는 기념품 상점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사정을 이야기하니 머뭇거림 없이 돈지리까지 차를 태워다 줍니다. 부랴부랴 차를 가지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10여분 여유가 있습니다.

비록 말 몇 마디였지만 젊은 공무원의 친절한 안내와 도움을 주려고 하던 마음이 '사량도'를 '사랑도'로 기억하게 해 줄 듯합니다. 서두르고, 편치 않았던 마음 탓에 긴장되었던 마음이 오뉴월 봄눈 녹듯 깡그리 녹았습니다. '뿌~뿌~' 거리는 뱃고동소리가 들리니 야트막하지만 하늘과 맞닿아 있는 옥녀봉을 바라보며 사량도를 떠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