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으 야그 -

한가위단상- 아들늠이 장가 가는데 왜 서글프냐고? . .

다음에는 2014. 9. 9. 01:05

오늘이  민족의 명절 -추석이라 하네요 . .

추석하고는  상관이 없지만 웬지 스산하고 불현 서글퍼 집니다 . .

 

 

 여름과의 작별인 듯, 벌써 가을바람 서늘한 날씨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어제 - 아들의 장래 장인/장모를 상견례를하고 온 탓인 듯 합니다 . .

 

저희는 딱 하나씩,  딸(73년생)과 아들(76년생)을 두었습니다 -  

딸은 10년전 삼십을 넘기며 가까스로(?) 결혼을 하였습니다

신랑, 사위늠은 독일계 유태인으로 백인입니다.

보스톤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아니라고 서운한 생각은 전혀/ 별로 없습니다 . . 

결혼 리셉션에서  신부 아버지인 저의 인사말 순서에

이런 요지로ㅡ인사를 했습니다 . .      (하하 ~ 명(?) 연설이라고 박수 같채를 받았죠 ㅎㅎ)  

<요지>

"우리 딸이 대학으로 떠난 해는 1991년벌써 오래전이었습니다 . . , 

- 略

그리고는 매년  때가 되면 딸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렷죠 . . 

대학 쥬니어 때 이후로는  자기 차를 가지고 매번 300 마일 거리를 운전하고 돌아 왔는데 -  

 늘 마음을 조리며 기다리곤 했죠  -   딸 바보 애비의 마음 이해 하시지요?.. .

- 略ㅡ

메인 - 마사츄세트 - 커네티컷- 을 거쳐 뉴욕으로 들어오는 딸은

집도착 1 마일 전에

아름답게 빼어난 뉴욕의 북부다리를 꼭 건너서 옵니다  " Called  Whitestone Bridge /  Throgs Neck Bridge  "

"아 , Bridge에 다  왔다" . .   다리입구에  도착하며 느끼는 딸의 

성취와 안도를  고대하며 감사하고는  했습니다 . .

- 略ㅡ

 

이제는  더 이상 다리를 바라보면서  애타게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 .

  우리 딸 Jein 과 사위 Nik 가  스스로 든든한 다리가 되었음을  알기 때문이죠 . .

 

"딸아,  사위야 -  든든한 다리가 되어  멋지게  잘 살아라 ! "

 

(하객의 절반이  미국인이었으므로 물론 영어로 연습해서 했습니다만,   써놓았던 원본은  (대범하려구요?)보관하지 않았죠- 대략 요약입니다 . . ㅎㅎ)

  * * *

 

아 그런데- 웬지 지금 마음은  서운합니다 . 서글픕니다 . .  아들은 그렇지 않기를 꼭 바랐었습니다 . .  

웬만하면 -한국인 며느리를 원했습니다 . .

평소에 . . 다짐도  잊지않고 해두었는데 -

 " 아들아,  며느리는  서양사람이 아니면  제발 좋겠다 그래야  이 애미애비가 편안하겠다 . .

     -  하다못해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라도 오케이다 ..  흑인도 스페니시도 물론 아니지만 .. 백인도 아녔으면 좋겠으니 알아서 노력해 다오 ! "

아들도  why is that  for ? 되물으며 의아해 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긍정은 하였더랬습니다 . . " OK -  I'll try it "

 

그런데 -   이제 꿈은 사라졌습니다 . .  본인도 노력한 듯 하였지만 . . 

금년초에 . . 대략 10여년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후배 격인  미국소녀와  사랑에 빠졋더랍니다  ( 예,  아주 예쁩니다 ㅎㅎ). .  그리고 결혼을 약속하였고 . .

이제는 서두르는 기세가 되었습니다 . .

웨딩 홀을  내년 5월 2일로 계약하고   부모님 만남을 주선하여  커네티컷 사둔댁 주변의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 .

아주 오랫만에  양식을 들었습니다 . . ㅎㅎ

어머니는 네델란드 여인 -요가 체조 교사 ,  아버지는  이스라엘 출신 - 보스턴 병원 응급외과 전문의 - 두 사람다 완벽한 채식주의자 그러나 유태인으로서 종교적이지는 않습니다 . .

조부모는 각각  네델란드와 이스라엘에 90세- 98세 로 생존하여 계시고

웨딩에도 모두 오시기로 했다합니다 . . 

우리 아들도 서울에 계신  외조모 (92세)가 이 기회에  한번 더 방문하기로 계획하였습니다 . .

저희 집안도 한국말을 점점 잃어가게 될런지 모를  두려움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

아들과 딸은  미쿡 사람으로 되어가지만 . .  나 자신은  그렇게 못될 것이 섭섭합니다 . .

글러벌 시대라지만 . .  나는 천천히 늦박자로  따라가리라 했었습니다..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한편으론, 미쿡서양 사람을  절반 한국사람으로 만들었노라고 위안해 볼 수도 있으려나요 ?

 

모든게 잘 되어 가고 있는듯 하죠, 그러하오나 . .  마음 한 켠 구석에 또한  서운함과  아쉬운 마음 멈추지 않습니다 . . 

 

아 -  맘대로 안되는게  골프하고  자식들 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요 .. 

이게 사실이기는 합니다 . .

 

어디에 살고 계시던 . .  고향생각에 젖는 즐거운 추석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