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비호· 애와증/혜화 ~

혜화동의 추억 . . 로타리를 돌면 언제나 거기 혜화 성당.. 혜화 유치원 .

다음에는 2010. 9. 27. 12:15

잠시 혜화 로타리의 추억에 잠깁니다 . .







혜화동 로타리 . . 

삼선교  성북동 . .  대학로 와  창경로에서 . .

집합이라도 하듯이 로타리에 몰려 들 오던  자동차들 . .

숫자를 표시로 달고 바쁘던 버스들 시발택시들 . .  빙글빙글  돌아가던  곳

가장 의젓하고 고풍스럽게 로타리원을 가르고 지나는 전차도 있었죠

아직도  눈에 선하지만 어릴 적-  아주 오래된 수십년 전의 

혜화 로타리인 거죠  . .  

 

제가 대학 2학년때 일입니다 .

혜화 성당의  본당신부님이시던 . . 유수철 신부님께서 

제게 엄명을 주셨었죠 . .

주일에 열리는 성당의 주일 학교에  교사를 하라는 겁니다 . . 

 

그래서 대학시절 2년동안을  주일학교 교사를 했었습니다 . .

 

교장 신부님은  아동교육에 전설같이 유명하신  이 리노 신부님이셨습니다 . .

주일학교 학생들은  각학년 . . 50여명 정도 씩 되엇는데 . .

일요일 9시 성당 마당에 와글 와글 집합합니다 . . 

우리들 교사는 한시간 이르게  8시에  유치원 교실에 다소곳이  모여서 교사 회의를 하며

교육 준비를 했습니다 .

조금은 어설펏겠지만  참 열심한 학생 교사였던 셈이지요 . .

남자 선생이  별로 흔하지 않았고 주로  여선생이 대세이었는데 . .

그래서 당연히  남자 선생은   고학년 이되는 5학년 또는 6학년  남자 아이들을 맡았더랬습니다 . .

요즘은 어쩐?  잘 모르겠으나 . . 그 때에도

초등생 5학년 6학년 악동들의 극성은 대단 합니다 . .  

20세 정도의  청년 대학생 교사야말로 . .   순 악동 개구쟁이들이 모인  5/6학년 주일 학생들을 

인솔하여 다루는데 겨우 감당할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 .

참 힘이 들긴 들었습니다 . .

수업시간은  일단  고함치듯 이야기 썰을 술술 잘 풀면 일단 제압이 되구요 ㅎㅎ  선생혼자 떠들어 장악하면 일단 되는데 . . ㅎㅎ

수업 그 뒤에 - 조용해야  마땅한- 미사 참예시간에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 .

떠들고 장난쳐야  직성 풀릴  초딩 머스마 녀석들이 . .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테니 말입니다.

 . . 그걸  책임지고 조용하게 ?  엄숙히 기도하는 분위기? 로 인솔해야 하는 ..

 교사 입장도  

역시  무지 고역이었더랬습니다 . .

 

그 중에서 . .  한 녀석이  여적지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 .   한 말썽쟁이 개구쟁이죠.

물론 6학년 나의 반 주일학교 제자인 셈인데 .. .  당근, 혜화 학교 초등생이엇습니다 . .  

이름은 못 잊습니다 . .  ' 경승 이 '  ( 경승아  미안! )

 ~ ㅎㅎ

집은  길건너  혜화 동  한옥집 . .

피부는 하얗고 . .  똥똥하게 살이찌고 체격이 큰 녀석인데  . . 여간 개구장이가 아닙니다 . .

몸이 크기때문에 . .  무리중에  언제나 설치고 왕잡습니다 . .

선생님인  나에게도  안하무인이고 . . 무례한 장난을 걸어 오곤 하였습니다 . .

때려주지도 못하고  . . 아주  애를 먹인 녀석이었습니다 . .

 

오늘 얘기의 . . 포인트는 바로 이겁니다 . .  . .   

수십년이  지난 후 . . 

뉴욕의 어느 모임에서  이녀석을 만난 겁니다 . .

"  아 ~ 아 ~   선생님 . .  저  기억 못하세요 . .   저  . . 김경승입니다 . . . ㅎㅎㅎ ~"

키도 크고 . .  몸무게도 상당하고  인물도 훤한 . . 당당한 거인

중년 아저씨였습니다 . . 

저런  -?    놀랍고 황당,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 . 

실은, . . .

나도  그때-  아직은 중년(?) 밖에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 .

녀석도 이미 40대이고 . . 나도 불과 40대일 뿐이었으니까요 . . ㅎㅎ

 

중년의 시절에  6/7 세의  나이 차이에 불과 하였지만 엄연한  선생님과 제자로  마주 만난 우리는

유수같은 세월의  감회에  놀랐습니다 . .

그리고 우리의 인연에  무지

감사하는 마음이었더랬습니다 . .   뉴져지에서 신앙도 열심하게 잘 살고 있다 했습니다 . .

 

"경승아 -   늬,  여전히  여기 살고 있냐 ?   한국으로  돌아갔냐 . .? 

 이제는  더이상  뽀송 뽀송 어린이도 아니고  

  더 이상 개구쟁이도 아닐터이지 

  흰 머리 나부낄게 틀림없는

  경승이  너의  모습이 또 

  보고 싶구나  " 

 

 

 

 

 


Ave Ma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