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 . . 사망과 실종. .
도시의 마비 . . 60만 이재민 . . 10만 을 바라보는 사망자 수 -
이것이 현실이었습니다 . .
외면하고 싶은 끔찍한 재앙입니다 . .
자연의 재앙이 무서운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 .
일본의 대지진 참사는 한마디로 끔찍하군오. . .
인간적인 동정과 재난에서의 회복을 위해 모든 이웃들이 힘을 모아 주어야 할 것은
불문가지요 . . 의심하지 않습니다 . .
무릇, 한국인의 가슴 밑바닥에는 일본이란. . 왜놈나라로 비춰지는 미움과 증오가 있습니다만 . .
이 기회에서 마저 . . 그따위 소인배같은 증오감을 내 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 .
동정하고 도와 주어야 하는것이 당연합니다 . .
단 -
초토화된 지진 지역의 피해 참상을 보면서 . .
평소에 기억 한구석에 담겨있는 - 다른때 겪은 우리의 참상이 떠오릅니다 . .
끔찍한 환영이 오늘도 이렇게 겹쳐져 보입니다. . .
바로 <임진왜란>의 7년이 그러하였고 . . 거대국가의 전쟁잔치같던 <육이오 전쟁>의 3년 동안이 -
그것입니다 . .
그 때 - 우리 한반도의 참상 .. 그것도 바로 이렇게 (그렇게) 가여웠습니다 . . . .
차라리 악몽이기를 바랄만큼 -
되돌아 보고 싶지않은
비극이었습니다.
파괴와 살상으로 인해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 존재하던시절.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었죠.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누구를 또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을 모두 경험하고
이제 실버 세대가 되었을 것 . . .
집도 가족도 모두 사라지고 . . . 이 세상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을까요?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고마웠을 것입니다.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었지요.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우리조국의 모습이었습니다 .
지금 -
임진왜란 때 조선땅의 난장판 난리 모습을 사진으로도 볼 수는 없습니다만 . .
그러나 . . . >
북쪽 저멀리로 임금은 줄행랑을 쳤대죠 . . 궁궐은 비어서 주인없는 나라인데 . . 어디에 하소해야 했을지..
때마춰 노비들은 관아를 습격하고 난입하여
노비문서를 불지르기도 했다죠 . .
경이로운 신무기 조총으로 무장한 침입자들이 물밀듯이 강산을 짓이겨 휩쓰는 사이사이에
마찬가지 짓밟히는 땅이듯이 무너져 내린 아녀자들과
살육과 학살의 지옥냄새가 진동하였을걸요 - .
충분히
상상하고 숨 죽여 들여 쉬면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
아 - 임진년의 난리통 이강산 . .
속절없었던 나라백성 -
兒孩들 女人들 食口들, 집안들. .
아 ~ 차라리 꿈이었기를 . .
아 ~ 깨어나선 악몽이라고 가슴쓸어볼 수나 있었으면 . . 그러나, 그 지독한 재앙과 참극의 현실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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