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추억과 희망과

아 끔찍한 참상- 차라리 악몽이었기를 . . .

다음에는 2011. 3. 14. 12:20

  파괴 . .  사망과 실종. .

도시의 마비 . . 60만 이재민 . .    10만 을 바라보는 사망자 수 -

이것이  현실이었습니다 . . 

외면하고 싶은 끔찍한 재앙입니다 . .

 

자연의 재앙이 무서운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 .

일본의 대지진 참사는 한마디로 끔찍하군오. . . 

인간적인 동정과  재난에서의 회복을 위해 모든 이웃들이  힘을 모아 주어야 할 것은

불문가지요 . .  의심하지 않습니다 . .   

 

무릇,  한국인의 가슴 밑바닥에는 일본이란. .  왜놈나라로 비춰지는  미움과 증오가 있습니다만 . .  

이 기회에서 마저 . .  그따위 소인배같은 증오감을  내 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 .

동정하고  도와 주어야 하는것이 당연합니다 . .

 

단 -

초토화된 지진 지역의 피해 참상을 보면서 . .

평소에 기억 한구석에 담겨있는 - 다른때 겪은 우리의 참상이  떠오릅니다 . .

끔찍한 환영이 오늘도 이렇게 겹쳐져 보입니다. . .

 

바로 <임진왜란>의 7년이 그러하였고 . . 거대국가의 전쟁잔치같던 <육이오 전쟁>의 3년 동안이 -

그것입니다 . .   

 

그 때 - 우리 한반도의 참상 ..  그것도  바로 이렇게 (그렇게) 가여웠습니다 . .  . .   

차라리 악몽이기를 바랄만큼 -

되돌아 보고 싶지않은

비극이었습니다.

 

 



파괴와 살상으로 인해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 존재하던시절.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었죠.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누구를 또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을 모두 경험하고

이제 실버 세대가 되었을 것 . . .

 



집도 가족도 모두 사라지고 . . .   이 세상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을까요?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고마웠을 것입니다.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었지요.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우리조국의 모습이었습니다 .  

 

지금  - 

임진왜란 때 조선땅의  난장판 난리 모습을 사진으로도 볼 수는 없습니다만 . . 

 

그러나 . . .   >

 

북쪽 저멀리로  임금은 줄행랑을 쳤대죠 . .  궁궐은 비어서 주인없는 나라인데 . . 어디에 하소해야 했을지..

때마춰 노비들은  관아를 습격하고 난입하여

노비문서를 불지르기도 했다죠 . .  

경이로운 신무기 조총으로 무장한 침입자들이 물밀듯이 강산을 짓이겨 휩쓰는 사이사이에

마찬가지 짓밟히는 땅이듯이 무너져 내린 아녀자들과 

살육과 학살의 지옥냄새가 진동하였을걸요 -  .

 

충분히 

상상하고 숨 죽여 들여 쉬면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

 

아 -  임진년의 난리통 이강산 . .

속절없었던 나라백성 -

兒孩들 女人들 食口들,  집안들. .

 

아 ~ 차라리 꿈이었기를 . . 

아 ~ 깨어나선 악몽이라고 가슴쓸어볼 수나 있었으면 . . 그러나, 그 지독한 재앙과 참극의 현실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