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비호· 애와증/나의 기쁨, 슬픔

개미는 어떻게 사는가 . . 조 병화

다음에는 2010. 6. 23. 07:43

 

                                   < 개미 >                         조 병화

 

                      개미는 왜 사는질 따지지 않는다
                      온 힘 다하여 부지런히 살 뿐이다
                      밟히면 밟히는 대로
                      병신이 되면 병신이 된 대로
                      그저 부지런히 살 뿐이다

                      개미는 불평을 하지 않는다
                      고달프다든가
                      힘들다든가
                      억울하다든가
                      배가 고프다든가
                      팔다리가 아프다든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부지런히 일을 할 뿐이다

                      개미는 인간이 앓는 고독을
                      앓지 않는다

                      개미는 인간이 앓는 명성을
                      앓지 않는다

                      개미는 인간이 앓는 출세를
                      앓지 않는다

                      개미는 인간이 앓는 고민을
                      앓지 않는다

                      개미는 인간이 않는 그런 병을
                      앓지 않는다

                      혼자서 살다가 혼자서 일하다가
                      혼자서 죽는다

                      개미는 왜 사는질 따지지 않는다
                      그저 대지를 열심히 살 뿐
                      인간이 거는 시비를 걸지 않는다

                     
                                        『高凰』18집, 73.12.6

.

      개미를 좀 과장한 곳도 있지만 부지런하게 그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그린거다.

 . . .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본 것이다.

      이러한 과도한 욕심, 과도한 자기 표현에서 오는 자기 불행, 그러한 것을 반성해 본 것이다.
      인생을 멋있게, 여유있게, 너그럽게 낭만적으로 살려면 자기 욕심의 조절이 있어야 하는 법이 아닌가.
     실로 우리들의 이 존재의 세계는 안개에 싸여 보이지 않으며, 그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갈망하여

     우리 인간들은 부지런히 그 꿈의 나무를 기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개미와 같이 묵묵히 묵묵히 더듬더듬 더듬거리며.


                                                             조병화, 『왜 사는가』, 자유문학사, pp. 83-84.

***** 다음은 . .  또 다른 면의  /요지경같은 이세상의 모습입니다 .   어디에선가 펌- 출처 불명 * * * * * *

 

 

변하지 않는 「20:80의 法則」    

       

이탈리아 사회학자 파레토(Pareto)가 우연히 개미들을 관찰하다가
열심히 일하는 놈은 약 20%뿐이고,
나머지 80%는 그럭저럭 시간만 때우는것을 발견했다.

흥미가 발동한 그는 일 잘하는 20%만 따로 갈라 놓아 보았다.
이들은 처음에는 모두 열심히 일하더니 곧 그중 80%는 놀기 시작했다.
일을 안하던 80% 집단도 시간이 지나니 곧 20:80의 비율로 일하는 무리가 생겼다.
유명한 「20:80의 법칙」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것은 인간사회에서 변할 수 없는 행동 양식과 계층구조를 보여주는 것이지
누가 누구를 착취함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의 생산 엘리트가 일을 못하면 전 사회가 불행해 짐을 보여주는 이론이다.

파레토가 풍년이 났을 때 마을에 내려가 보니
풍년 덕에 곡식을 가득히 채운 집은 20% 정도였고,
나머지 80%는 그럭저럭 형편이 나아졌을 뿐이었다.
흉년이 났을 때는 80%가 굶을 지경이 됐지만,
20% 농가가 저축한 양식으로 겨울을 굶어죽지 않고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좌파집단은 이 법칙을 민중을 선동하는 전가(傳家)의 寶刀로 활용한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20%는 잘 살고 80%는 버려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정글 자본주의”라고 질타한다.

상위 20%를 계속 잘라 버리고 쫓아내는 사회를 假想 해보자.
나머지 80% 중 또 ‘잘사는 20%’가 생길 것이다.
이들을 잘라내고 또 잘라 낸다면
결국 하위 80%만이 80, 64, 51.2로 경제규모를 자꾸 축소 생산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100%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음은 역사가 말해 준다.
이렇게 가난해지는 고통은 상위 20%보다 하위 80%가 더 겪게 된다는 사실은
지난 정부 아래서 늘어난 서민의 고통이 잘 말해 준다.

최근 정부의 정책은 親시장, 친기업으로 알려졌다.
야당의 극단적 반(反)자본주의 사상도 문제지만, 더 고약한 것은
국민을 20% 집단과 80% 집단으로 나누어 적대 시키려는 태도다.

근대 서구 역사를 보면 知性이 항상 문명을 이끌어 왔다.

[퍼온 글: 출처 기록하지 못해 죄송]